안양법무법인 “땀흘려서 죄송해요” 여성 환자들의 ‘부당한 사과’…의학이 주입한 ‘여성의 몸’에 대한 편견[플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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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민종 작성일26-02-09 21:49 조회14회 댓글0건본문
미국에서 유방암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종양내과 전문의인 저자가 여성 환자들에게 자주 듣는 말은 다름아닌 사과다. 그는 “부당한 사과”를 수도 없이 들었다고 했다. 아파서, 검진 약속을 놓쳐서, 내 증상을 알아차리지 못해서, 상처가 보기 흉할까 봐….
미안함의 이유는 갖가지다. 아픈 자신의 모습에서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느끼는 건 남성 환자들에게서는 잘 보이지 않는 태도이다.
의학사를 전공한 저자는 그 모습이 수세기 동안 ‘여성의 몸은 어떠해야 한다’고 규정해온 관습의 잔재라고 말한다. 서구 의학은 ‘여성은 운동할 수 없는 몸’이라는 등 그릇된 여성관에 과학적 근거가 있다고 믿도록 일조한 공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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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을 신체의 기준으로 상정한 현대 의학은 여성의 몸을 자주 오해했다. 책은 의학이 여성의 몸과 고통을 어떻게 오진하고 축소하며 체계적으로 왜곡해왔는지를 신랄하게 파헤친다.
예를 들어 현대 의학의 아버지 윌리엄 오슬러(1849~1919)는 심장마비를 ‘남자다움’과 연관 짓고 여성들이 말하는 심장 질환은 심리적 문제에 가깝다고 주장했다. 저자는 여성이 호소하는 고통을 질병이 아닌 ‘기분 탓’으로 돌리는 것이 오늘날의 의료현장에서도 반복되고 있다고 경고한다.
11개 장으로 나뉜 책은 외피계·골격계·내분비계 등 개별적 기관계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다룬다. 저자가 직접 만난 환자를 비롯해 사료 속 의사와 환자들의 사례를 중심으로 의학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낸다.
‘여성의 자전거 타기가 불임을 초래할 수 있다’고 믿었던 1890년대 서양의 모습처럼 우스꽝스러운 일화도 많다. 그만큼 뿌리 깊은 오진의 역사를 들춰보며 저자는 여성들이 “병원에서도 단호하게 지혜롭고 자신 있게 마땅히 받아야 하는 치료를 당당히 요구할 수 있기”를 바란다.
▼ 전지현 기자 jhyun@khan.kr
“보는 데 힘들지 않으셨어요? 저도 편집할 때 힘들었어요(웃음).”
지난 3일 서울 마포구 인디스페이스. 이일하 감독(52)이 자신의 다큐멘터리 영화 <청년정치백서-쇼미더저스티스> 관람을 막 마친 관객들에게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객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불법 계엄 이후 좌우를 막론하고 광장에 목소리가 터져 나왔던 지난 한 해, ‘자기 진영’의 목소리만을 듣는 게 익숙해졌을 관객들에게 이 영화를 관람하는 건 확실히 유별난 경험일 수 있다.
영화는 대학 운동권 출신 ‘진보 청년’ 김창인(36)과 헬스장을 운영하는 자영업자 ‘보수 청년’ 김현진(43)의 정치 도전기를 교차해 담는다. 두 사람이 21대 총선에서 청년 비례대표가 되길 열망하던 2020년 전후를 중심으로 여정이 시작된다. 창인과 현진은 서울 여의도 국회 밖 어느 잔디밭에서의 단 한 순간을 제외하고는 만나지 않는다.
이 감독이 아니었다면 애당초 둘은 평생 볼 일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민주적 사회주의자’인 창인은 동지들과 좁은 사무실에서 정책과 선거 전략을 논한다. 평등을 꿈꾸는 그의 말은 학술적이며 이상적이다. 실질적인 표를 모으기는 힘들다는 말이다.
반면 현진의 언어는 선동적이지만, 지나치게 날것이다. 상경해 자수성가한 헬스장 사장으로서 최저임금 인상 등 “좌파들의 정책”은 그에게 ‘도둑놈의 심보’로 보인다. 2019년 황교안 자유한국당 전 대표가 단식할 때 동조 단식을 했던 건 물론 삭발, 삼보일배, 1인 시위 등을 하는 게 그의 애국이다. 거리와 유튜브에서 쏟아지는 ‘애국시민’들의 후원은 그를 더 과격한 행동으로 나아가게 한다.
정치 지향에 따라 공감 가는 인물이 다를 수밖에 없다. 영화의 미덕은 둘의 얘기를 같은 비중으로 병렬 배치한다는 점에 있다. 어느 쪽에 서 있건 106분이라는 러닝타임 중 절반은 평소에 거들떠보지 않았던 상대 진영의 얘기를 강제 시청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이해는 안 될지라도 희한하게 정이 든다.
영화는 끝나면서 시작한다. 독립·예술극장에서 상영되는 이 영화는 지난달 24일 첫 회를 시작으로 상영이 끝나고 매 회차 다른 콘셉트의 관객 참여형 토크쇼를 진행한다. 이 감독은 이를 ‘관객과의 대화(GV)’가 아닌 ‘청정백쇼’라고 이름 지었다. 스탠드업 코미디언, 보수 및 진보 진영 정치인과 유튜버, 영화감독 등이 창인·현진과 조합을 달리하며 출연한다.
이 감독은 지난 5일 통화에서 “기득권과 비기득권, 그리고 진보와 보수가 서로 이해하려는 생각을 아예 않는 상황이니만큼 서로 대화를 나누는 장을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쇼 기획 취지를 밝혔다. ‘정치 얘기는 하는 게 아니’라지만, 이 감독이 열어젖힌 공론장에서 개개인의 정치 지향은 유쾌한 대화 소재가 된다.
일부 회차에서는 관객들이 작성한 설문지를 바탕으로 쇼가 진행되는데, 그 질문도 매번 다르다. ‘대선에서 창인과 현진 중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면 누굴 뽑겠습니까?’ ‘당신이 정치인이 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등이다.
다큐멘터리 속 인물에 그칠 수 있었던 창인과 현진의 현재를 엿볼 수 있다는 건 청정백쇼의 또 다른 장점이다. 영화는 2019년부터 2024년까지 6년여의 기록이다. 불법 계엄이라는 정치적 사건이 있기 전 촬영이 대부분 끝났다. 다큐멘터리에 업데이트되지 않은 두 사람의 지난 한 해를 직접 물을 수 있는 청정백쇼는 영화에 현재성을 더한다. 기자가 목격한 지난 3일 청정백쇼에서는 함께 관객 앞에 서면서도 서로 전혀 친해 보이지 않는 창인과 현진의 불퉁한 상호작용과 그 모두를 흥미로워하는 듯한 이 감독의 열렬한 반응이 눈에 띄었다.
지금은 ‘청년’ 정치백서이지만 이 감독은 장장 12년에 걸쳐 찍은 영화 <보이후드>처럼 두 사람의 삶을 길게 따라갈 계획이다. “이들이 한 번은 시의원이나 국회의원이 되지 않을까 싶거든요. 현역일 때 <중년정치백서>, 은퇴 후 <장년정치백서>를 찍는다면 대한민국 정치사가 쭉 보이지 않을까요.” 이 감독의 말에 현진은 “감독님이 굉장히 오래 살아야 할 거 같다. 현실적이지 않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청년정치백서-쇼미더저스티스>는 지방선거가 있는 6월까지 전국을 순회하며 상영될 예정이다. 2월에는 서울·강릉·대구 등에서 상영이 확정됐다. 이 감독은 “작은 영화인 만큼 관을 하나씩 열어나가는 중”이라며 “게스트로 온 스탠드업 코미디언들의 대화를 팟캐스트 형식으로 녹음하는 등 다양한 콘셉트로 청정백쇼를 기획할 예정”이라고 했다.
1.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 왕>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자기 아버지를 죽이고 자기 어머니와 결혼할 운명을 지니고 태어난 아이가 결국 비극적 결말에 도달한다는 이야기이다.
끔찍한 운명의 주인공 오이디푸스는 뛰어난 지혜와 용기를 갖춘 영웅이었다. 사람들을 해치는 괴물 스핑크스를 물리쳐서 그 공로로 테바이의 왕이 된 걸출한 존재였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아테네의 장군 소포클레스는 대체 왜, 다른 나라 왕실의 오래전 이야기를 자기 나라의 주권자 시민들 앞에 내놓은 것일까. 이 맥락이 지닌 몇 겹의 아이러니 속에는 민주주의의 본성과 문화의 운명이 감싸여 있다.
2.
오이디푸스의 이야기에 접하게 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질문이 있다. 이 비참한 사태에 대한 책임을 누구에게 물어야 하나. 그는 저주받은 자기 운명을 알게 된 후로 그것을 피하려 기를 써서 노력했다. 자기가 자라난 땅 코린토스를 떠나 이국땅 테바이로 옮겨간 것도 그런 까닭이었다. 자기가 테바이의 왕자로 태어났다는 사실은 꿈에도 알 수 없었다.
비극의 초입에서 테바이의 왕 오이디푸스는 묻는다. 선왕 라이오스를 살해한 자가 누구냐. 국왕 시해자를 찾아서 응징을 해야 테바이에 창궐한 역병을 물리칠 수 있는 까닭이다. 범인은 바로 그 자신이라는 사실이 첫 번째 아이러니다. 그가 죽인 사람이 테바이의 선왕이며 자기 부친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모친이자 부인이었던 왕비 이오카스테는 자살하고, 그는 두 눈을 찔러 스스로를 처벌한다.
이 사태에서 가장 문제적인 것은, 어둠 속에 있어야 할 한 사람의 운명이 백일하에 노출되어 버렸다는 점이다. 저주받은 운명을 알게 된 부모는 자식을 버렸고, 친부모를 모르는 채 자라난 자식은 운명을 향해 다가간다. 운명을 피하려 했던 길이 역설적이게도 운명을 향해 가는 길이 되어버린다. 천기누설이 없었다면 사태가 바뀌었을까. 운명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이루어질 일이었다고 해야 할까.
극작가 소포클레스 자신은 이 참담한 사태에 대해 오만의 결과라고 책망한다. “오만은 폭군을 낳는 법”이라고, “정의의 여신을 두려워하지 않고, 신상들을 어려워하지 않고, 행동이나 말에서 교만의 길을 걷는 자가 있다면, 불운한 교만 때문에 사악한 운명이 그를 잡아갈지어다”라고. 영웅들의 비극적 흠결인 ‘오만’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오이디푸스에게 이런 비난은 부당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산중에서 마주친 낯선 일행들과의 싸움과 그로 인해 빚어진 살인은 정당방위였고, 홀로 된 왕비와의 결혼은 왕이 되기 위한 합당한 절차였다. 그들이 친부모인 줄 알았더라면 결코 생길 수 없는 일들이었다. 오이디푸스의 오만이 비극을 초래했다고 말할 수 없음은 당연하지 않은가. 천하의 소포클레스가 이만한 이치를 몰랐을까.
3.
소포클레스의 또 다른 비극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에서, 유랑에 지친 늙은 맹인 오이디푸스는 자기 처지의 부당함에 대해 항변한다. 요컨대 오만 때문에 여러 사람의 인생을 망쳤다는 식으로 오이디푸스를 비난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음을, 소포클레스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소포클레스의 오만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는 누구를 겨냥한 것인가.
우선, 32년 동안 아테네의 최전성기를 구가한 민주정의 지도자 페리클레스를 진짜 대상으로 꼽아볼 수 있지 않을까. 스파르타와의 전쟁에 장군으로 참여했던 소포클레스는 자기보다 두 살 아래인 아테네의 지도자 페리클레스에게, 폭군이 되지 않으려면 모름지기 겸손해야 한다고, 지도자의 오만과 무지성과 태만은 민주주의 공동체를 나락으로 끌고 갈 수 있다고, 코러스의 입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소포클레스가 활동했던 고전 비극의 절정기는 아테네가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바야흐로 최강국으로 발돋움하던 때이다. 델로스 동맹의 맹주였던 아테네는 동맹국들을 속국화함으로써 제국이 되었고, 전통의 최강국 스파르타는 새로 부상한 해양 강국 아테네를 견제하려다 마침내 전쟁에 돌입하게 된다. 두 나라는 이른바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져버리고, 아테네의 적국이었던 오이디푸스왕의 나라 테바이는 어부지리를 얻는다. 페르시아 전쟁 때는 페르시아 편이었고, 스파르타와의 전쟁 때는 스파르타 편이었던 나라가 테바이였다. 그러니까 <오이디푸스 왕>의 공연은 우리 역사로 치면, 신라 왕실의 비극 이야기를 백제 사람들이 연극으로 올려놓고 즐기는 형국이니, 찬탄과 조롱 사이를 오가는 아이러니의 기운이 선연하지 않을 수 없다.
<오이디푸스 왕>을 둘러싼 역사·정치적 맥락에서 무엇보다 돋보이는 것은, 문화적 업적을 생산해내는 민주주의 체제의 탁월한 힘이다. 토론과 언설이 힘을 발휘하는 곳에서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자 하는 의지와 역량이 문화와 사상의 수준을 고양시킨다. 스파르타와 테바이, 코린토스 같은 당대 강국들 중에서, 오늘날까지 빛을 발하는 찬란한 문화의 힘을 보여준 유일한 나라가 민주주의 국가 아테네이다. 아이스킬로스에서 소포클레스를 거쳐 에우리피데스로 이어지는 고전 비극의 거장들은 모두 민주정 시기 아테네에서 나왔다. 그러니까 ‘그리스 비극’이라는 용어는 ‘아테네 비극’이라는 말로 수정되어야 사실에 부합한다. 희극의 대가 아리스토파네스도 마찬가지이고,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사상사의 천재들도 마찬가지이다. 아테네의 경제력과 문화적 개방성, 그리고 민주주의의 힘이 없었더라면 이들은 모두 생겨날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
4.
그런데 페리클레스가 오만했다고? 그의 시대 아테네 역사는 민주주의가 얼마나 취약한 제도인지를 알려준다. 민주정의 힘이 있어 소포클레스와 소크라테스가 생겨났지만, 소크라테스에게 사형 판결을 내린 것도 민주정의 결실인 아테네 시민 법정이다. 시민들의 집단 지성은 페리클레스를 지도자로 옹립하여 국력의 최전성기를 구가했지만, 또한 호전적 선동가 클레온과 매력적인 용모의 청년 매국노 알키비아데스(소크라테스의 총애를 받던 제자로, 스파르타와 페르시아 편에 붙어 아테네를 패전과 쇠락으로 몰아넣었다)를 지도자로 선출한 것 역시 민주정의 주권자 시민 집단이었다. 민주주의 최대의 적은 언제나 민주주의 자신이다.
그렇다면 “오만은 폭군을 낳는 법”이라는 소포클레스의 대사가 누구를 겨냥하는 것인지 좀 더 분명해지는 것이 아닌가. 오만이란 언제나 힘세고 잘난 존재, 주권자에게서 생겨나는 증상이기 때문이다. 스파르타와의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전사자들을 위한 장례 연설에서 페리클레스가 민주주의의 적으로 경고한 것은 정치적 무관심이었다. 안정된 실체로서의 민주주의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자기 안에 있는 반민주적 요소들을 적발하고 밀어냄으로써 스스로를 유지하는 역량이 민주주의 본질이다. 민주정의 주권자는 불개미 떼와 같아서 뭉치면 강력하지만 길을 잃기 쉽다. 그러니까 페리클레스와 소포클레스는 입을 모아서 주권자 시민들을 향해 오만은 위험하다고 말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소포클레스가 말하는 오만은 페리클레스의 언어로는 정치적 무관심에 상응하거니와, 그것은 곧 세상을 망가뜨리는 무지성이자 주권자를 백치화하는 정치적 나태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민주주의는 비효율적이고 집단 정동에 취약한 체제이다. 하지만 둔하고 실속 없어 보이더라도, 자기가 만든 절차를 지켜내는 주권자의 자기 존중이야말로 민주주의를 지키는 요체가 된다.
이런 사태를 고요히 지켜봐온 늙은 맹인 오이디푸스라면, 2026년 2월 대한민국 시민들의 마음속에서 울려나오는 또 다른 목소리를 듣고 있을 것이다. 노심초사하면서, 때로는 생업을 미뤄둘 만큼 절망하고 분노하면서 보낸 지난 1년여의 시간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이제 안다. 합법적 절차를 위한 집단적 인내와 응시의 시간이, 또한 답답하고 괴로웠던 순간들의 거대한 집적과 꿈틀거림이 우리 민주주의의 단단한 초석이 되어 있음을 이제 느낀다. 그런 마음의 에너지야말로, 또한 그로부터 발원한 시민들의 행동이야말로 민주주의의 구조적 취약성을 지켜내는 진짜 힘이라는 것을, 새들도 벌레들도 이제는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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