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테크정보 [논설위원의 단도직입]“실용외교, 미·중과의 관계 50 대 50으로 맞추는 ‘균형 외교’와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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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민종 작성일25-06-20 13:44 조회6회 댓글0건본문
조병제 전 국립외교원장(69)은 “자국 우선주의 시대에 이념·진영이라는 경직된 개념으로는 국익을 보호할 수 없다”며 “실용외교는 국익을 찾아가는 접근법”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미는 동맹, 한·중은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라며 미·중과의 관계가 “같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은 현실을 너무 무시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이 전 정부 정책 중 쓸 만한 것은 계승하겠다고 한 것도 “정권이 바뀌었다고 정책까지 바꾸는 것은 대외 정책에서 좋지 않다”고 평가했다.
이 대통령이 다자외교 무대인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차 캐나다로 떠난 지난 16일 조 전 원장을 경향신문사에서 만났다. 트럼프 대통령의 조기 귀국으로 한·미 정상회담 무산 소식이 알려진 17일 전화 인터뷰를 더했다.
이념·진영으로 외교 접근, 국익 보호 못해
- 이재명 정부가 ‘국익 중심 실용외교’를 제시했습니다.
“오늘날 필요한 최상의 접근이라고 봅니다. 지금은 ‘자국 우선주의’ 시대입니다. 실용이라는 유연한 외교가 필요합니다. 이념이나 진영이라는 경직된 개념으로는 국익을 보호할 수 없어요.”
- 실용외교는 윤석열 정부 대외 정책에 대한 비판적 평가가 반영된 것입니까.
“윤석열 정부가 이념에 경도된 것은 확실하죠. 조 바이든 정부가 세계를 보는 시각이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였는데, 윤석열 정부는 거기에 확 달려들었습니다. ‘내 친구의 적은 나의 적’이라는 식이었죠. 지금은 그런 이분법적 흑백 논리로 국제관계를 볼 수 있는 시기가 아니죠. 국제관계를 주도하는 미국의 ‘미국 우선주의’를 조금 확장하면 자국 우선주의 아닙니까. 모두가 자국 이익을 우선하는데 여기엔 이념 공동체라는 개념이 들어가지 않아요. 우리 국익이 어디에 있고, 어떻게 구현할지 사안마다 따져야 하는 상황입니다.”
- 실용외교는 추상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이념·진영이라는 하나의 잣대로 구분하고 가른다면 쉽죠. 실용은 실사구시와 비슷한 거죠. 하나의 원칙일 뿐이고 그 자체가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답을 찾아가는 하나의 방법이죠. 실용외교도 우리의 국가 이익을 찾아가는 접근법입니다. 쉽지 않을 수도 있지만 ‘국민’을 중심에 놓으면 어려울 일도 아니라고 봅니다.”
- 역대 정부 중 이재명 정부의 실용외교에 참고할 만한 정부가 있습니까.
“김대중(DJ) 정부입니다. 이념에 경도되지 않았고, 진영으로 구분하려 하지 않았고, 실질적 필요에 따라 주변 나라와의 관계를 정립해 나갔어요. 한·미 동맹을 외교 근간으로 삼았고 미국과의 관계가 좋았죠. 일본과의 관계도 DJ 때 최상이었다고 볼 수 있어요.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은 DJ가 만들어낸 작품 아닙니까. 그때 나왔던 ‘과거를 직시하면서 미래를 지향한다’는 말은 지금도 한·일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인정받고 있죠. 중국과의 관계도 한국의 상황과 경제적 위치를 고려해서 잘 관리해 나가겠다는 것이었고, 러시아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남북관계도 어떻게든지 타개해 나가려고 했습니다. 이 대통령의 외교 원칙이 DJ가 실제로 편 정책과 통하는 부분이 참 많다고 볼 수 있죠.”
- 이 대통령의 초기 외교 행보를 어떻게 보셨는지요.
“트럼프 대통령을 시작으로 일본·중국 정상과 통화하면서 신정부의 외교적 지향을 분명히 했습니다. 취임 12일 만에 G7(주요 7개국) 정상회의에 참석했는데 인수위 없이 취임하고 보좌진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다자외교 무대에 선다는 것은 여러모로 무리입니다. 그런데도 가기로 한 것은 ‘한국이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신호를 국제사회에 전파하는 일이 엄중하다는 인식과 ‘재임 중 G7 가입’이라는 외교 목표에 비춰 호기를 놓칠 수 없다는 판단이 있었을 것입니다.”
- G7에서 한·미 정상회담이 예정됐다가 트럼프가 중동 문제로 조기 귀국하면서 무산됐습니다.
“아쉽지만 미국이 사전에 양해를 구한 만큼 별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한·일 정상회담은 예정대로 열린다고 하니 잘 진행되길 바랍니다.”
- 한·미 정상 모두 오는 24일 네덜란드에서 열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할 가능성이 거론됩니다.
“이 대통령이 7~8월 중 워싱턴을 방문할 걸로 예상되는데, 한·미 정상이 나토에서 미리 만나 ‘다음에 좋은 얘기 합시다’라고 얘기하는 것도 나쁠 건 없죠.”
- 중국·러시아와의 관계 문제를 두고 이 대통령의 나토 참석에 대한 상반된 의견도 나왔었는데요.
“G7 참석으로 다자외교를 시작했으면 나토에도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이 대통령은 전임 정부가 했던 정책일지라도 좋은 것은 받아들여 계승하겠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정권이 바뀌면 정책까지도 바꾸려 하는 경향이 있는데 대외 정책에서는 좋지 않습니다. 전임 정부가 나토 참석을 결정하기가 쉽지 않을 수 있었지만 결정해서 갔거든요. 그러면 이재명 정부 입장에서는 이미 길이 닦여져 있어요. 3년간 갔으니까 이재명 정부가 간다고 해도 왜 갔느냐고 시비 걸 사람은 별로 많지 않아요. 그런데 가지 않으면 왜 안 갔느냐고 따질 사람들은 많죠. 특히 중·러 때문에 가지 않겠다면 앞으로도 못 가게 되겠죠.”
위성락·이종석, 괜찮은 조합
- 일각에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과 이종석 국정원장 후보자를 두고 동맹파·자주파 구도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언론에서 만든 스토리 아닙니까(웃음)? 국정에서 중요하고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분들이 사심 섞인 얘기를 하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세계 전체를 외부로 보는 시각과 한반도 상황을 관리하는 시각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반도 문제를 제대로 풀어나갈 수 있고, 잘 결합돼야 하나의 완성체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재명 외교라는 전체적인 틀에서 본다면 두 분은 괜찮은 조합이라고 봐요.”
- 지난해 펴낸 저서 <트럼프의 귀환> 부제가 ‘위기인가, 기회인가’입니다. 트럼프는 한국 입장에 위기일까요, 기회일까요.
“한국은 지난 80년 동안 자유주의 국제질서 속에서 국가 발전을 이뤘지만 이것이 자국 우선주의로 바뀌면서 지금까지 겪지 못한 환경에 내몰리게 됐습니다. 어려움이 없을 수 없죠. 그렇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한국은 스스로 국가 이익이 무엇인지, 어떤 전략이 필요한지 진지하게 성찰하게 됐습니다. 한국이 국제사회의 성숙한 행위자로 거듭날 것인 만큼 트럼프 시대는 기회일 수 있습니다.”
- 미국은 동맹국들에 중국 견제를 위해 미국 편에 서라고 했습니다. 한국이 동참하면 대중 관계 악화를 감수해야 하고, 자칫 미·중 충돌의 종속 변수로 끌려갈 수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미국의 중국과의 전략 경쟁은 단순하지도, 단시간에 끝날 사안도 아닙니다. 미·중은 갈등하면서도 희토류를 둘러싸고 협상했습니다. 일본은 중국 견제 선봉에 서지만, 제1 무역 상대국은 여전히 중국입니다. 한·미 동맹은 한국 외교·안보 정책의 근간으로, 미·중관계가 악화된다면 중국과의 관계가 불편해질 수밖에 없죠. 이건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그렇다고 중국과의 관계를 단절해야 하나? 그건 아니라는 거죠. 우리 경제의 20%를 의존하는 중국과 교류 협력을 중단하면 국민 전체의 경제 수준을 유지할 수 없어요. 중국에서 희토류를 안 가져오면 반도체를 못 만들잖아요. 작고 무기력한 한국은 동맹국으로서 가치도 떨어집니다. 현실적이고 유연한 접근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미·중 사이에서 어떤 포지셔닝을 할지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저는 우리 외교에서 균형이라는 말을 쓰는 걸 싫어합니다. ‘균형 외교’라고 할 때 보면 ‘등거리 외교’와 같은 얘기가 되거든요. 미국과의 관계에 50을 유지하고 있으면 중국과의 관계도 50을 유지해야 되는 것처럼 들리는 거예요. 우리가 하려는 것도 등거리는 아니잖아요. 한국은 이미 미국 쪽에 서 있어요. 미국이 제조업을 강화해야겠다고 해서 대미 투자를 하는 것, 주한미군에 평택의 넓고 좋은 기지를 준 것도 한쪽에 선 것이죠. 한·미는 동맹이고, 한·중은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입니다. 같을 수 없어요. 하지만 중국을 배제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된다는 생각은 잘못됐고, 현실을 너무 무시하는 겁니다.”
- 미국 안보 전략 재설정의 일환으로 주한미군 감축·재배치 문제가 계속 거론되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한국의 국력이 신장되고 국방력이 강화되면서 주한미군 역할과 기능은 계속 낮아졌습니다. 지난 10년 정도 주한미군이 2만8500명으로 돼 있었는데 이것도 가변적일 수 있다고 봐야 합니다. 숫자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한·미 연합방위태세로 대북 억지력을 유지할 수 있느냐는 점에서 주한미군 수준을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북한 위협이 상대적으로 줄어든다면 미국의 지원 능력이 조금 약화돼도 억지력에선 문제없는 거죠.”
-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는 노무현 정부 때 정리된 사안이 아니었나요.
“2006년 1월 합의에서 양측이 서로 존중한다고만 했지 ‘존중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느냐’는 부분은 협의가 없었거든요. 그런데 대만해협 주한미군 투입 같은 가상 시나리오가 자꾸 나오니까 이런 상황이 되는 거죠. 양측이 솔직하게 터놓고 얘기할 필요는 있습니다.”
- 미국이 한국에 한반도 안보를 떠넘기는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습니다.
“미국이 중국과 가상 군사작전을 하면 불이 붙는 점화 지역은 대만으로 나오는 거예요. 미국 군부의 머리를 싸매게 만드는 문제인 것 같습니다. 한반도는 한국이 알아서 하라며 국방비 올리라고 하고, 정 못하겠다면 미국에 부탁을 하는데 비용을 내라는 거죠. 또 미국이 필요하면 주한미군 병력을 대만으로 옮길 수도 있는데 괜찮냐는 게 전략적 유연성 문제입니다. 이것은 세계 경찰 노릇을 그만하겠다는 트럼프 입장에선 일관성 있는 정책이에요. 그러면 한국은 결정해야 될 부분들이 있어요. 트럼프 얘기가 맞다 싶으면 한반도 방위를 한국이 주도할 준비가 되어야 합니다. 전시작전권 전환 문제도 해결돼야 합니다. 우리가 없는 전략무기는 미국에 의존한다 하더라도 재래식 전력에서는 스스로 감당할 각오를 해야 합니다.”
- 트럼프는 경제와 안보 사안을 ‘원스톱 쇼핑’으로 해결하겠다고 했습니다.
“경제와 안보는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패키지로 묶일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두 사안이 성격과 배경 논리가 달라 협상 기술 측면에서는 한꺼번에 다루기 어려워요. 우리가 계속 무역흑자를, 미국은 계속 손해를 봐야 한다는 논리는 성립될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면 기존 틀을 깨고 새로운 상태로 옮겨가야 되는데 미국만 좋고 우리는 전혀 안 좋아선 할 수 없는 거 아닙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어디에서 이익의 균형을 취할지가 관건인데 굳이 상품이 아니더라도 그 영역은 많이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도 세계의 가장 우수한 기술들이 미국에 집약돼 있는 게 많죠. 이 기회에 꼭 얻어내야 하는 게 우주항공 분야입니다. 원자력도 우리는 지금 농축을 못하니 원자력 연료를 전혀 자급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이걸 자꾸 한국의 핵무장으로 연결시키는데 산업적 측면에서 미국의 협조를 얻어 풀어야 할 분야죠.”
- 이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과의 통화에서 ‘교류와 협력을 통한 관계 개선’을 말했습니다. 어떤 접근법이 필요할까요.
“정부의 정책 표명은 예측 가능하고, 돌출적이지 않으며, 관계 전반을 감안해 신중해야 합니다. 한·중 간 전략적 소통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고 중요합니다. 2017년 12월 문재인 대통령 방중 이후 공식 양자 정상회담이 없었습니다. 완전한 관계 정상화와 소통 재개를 위해 시간 제약이 있더라도 오는 11월 경주 APEC(아·태경제협력체) 정상회의를 계기로 시 주석의 공식 방한이 이뤄지기를 바랍니다.”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 정신 상기를
- 일본과의 관계 개선에선 과거사 인식이 걸림돌이 돼 왔습니다.
“이 대통령과 이시바 시게루 총리가 지난 9일 통화에서 ‘오늘날의 전략적 상황에서 양국 협력이 중요하다’는 공감대를 확인한 건 좋은 신호였습니다. 지금 양측이 상당히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는데 여기서 삐끗하면 양쪽이 다 손해볼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관리에 집중할 거라고 봅니다. 이 대통령이 얘기한 정책 일관성은 위안부 문제, 징용 문제에서 전 정부 약속을 함부로 뒤집으려 하지 않겠다는 것이죠.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 정신을 상기해 나가야 합니다. 향후 과거를 직시해야 되는 부분들이 교과서 문제, 유네스코 등재 문제 등인데 조심해야죠. 일본도 같이 뭘 해줘야 되는데 안 해줬다는 것이 우리한테 있기 때문에 일본이 다시 또 한국 정서를 자극한다면 양국 관계를 관리해 나가는 게 어려워질 수 있어요.”
- 트럼프 2기에서 북·미 대화 가능성에 대해선 어떻게 전망합니까.
“트럼프는 김정은과의 회담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여왔죠. 문제는 김정은 입장입니다. 하노이까지 가서 쓴맛 봤으니 섣불리 회담에 나서려 하지 않을 겁니다. 현재 김정은은 러시아와 전략동맹을 강화해 깊은 배후를 확보했어요. 트럼프가 카드를 제시할 때까지 기싸움을 이어갈 걸로 보입니다. 새로운 만남에서는 한·미 연합훈련, 전략자산 전개, 주한미군 문제 같은 ‘안전 담보를 위한 새로운 군사 조치’가 논의될 걸로 예상합니다. 북·미 대화 재개는 우크라이나전 종전 및 미·러관계 개선 시점이 되어야 가시화될 걸로 보입니다.”
- 남북관계는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요.
“지난 30년 이상 대북정책은 북한 비핵화를 목표로 추진됐지만 지금은 목표에서 멀어지는 느낌입니다. 트럼프조차 북한을 ‘핵국가’라고 부릅니다. 북핵 대응은 억지력을 바탕으로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할 과제입니다. 국내 의견수렴, 남북 긴장 완화와 신뢰 회복, 국제사회 공감 확보 등 세 차원의 작업이 병행돼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신정부 출범 후 전방지역 전단 살포와 선전방송을 일방적으로 중지한 것은 잘한 조치입니다. 지금은 정상회담 같은 이벤트보다 지속적 관계 개선을 위한 신뢰 회복에 주안점을 둬야 할 때입니다.”
- 북·미 대화 국면이 열리면 한국이 패싱되는 일이 벌어질까요.
“남북관계가 좋을 때도 북한 입장에서 보면 미국과의 대화로 한반도에서 입지를 강화하려 하는데 남한을 끼워주고 싶겠습니까. 북한이 우리를 도저히 따돌리지 못할 구조를 만들어내야죠. 그러려면 한·미관계를 잘 가져가야 합니다. 미국도 남한을 빼놓고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미국이 북한에 경제 지원을 해준다 해도 자기들 생돈을 다 집어넣는 게 아니라 남한 돈을 끌어다 쓰고 싶겠죠. 그러면 남한을 완전히 배제하는 북·미 접촉은 있을 수 없어요.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국정기획위원회가 20일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 업무보고에서 “윤석열 정권이 대한민국 언론 자유와 민주주의에 끼친 해악은 내란 못지않다”며 강경 비판했다. 이진숙 방통위원장은 업무보고에 불참했다.
홍창남 국정기획위 사회2분과장은 이날 오전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방통위 업무보고에서 “윤석열 정권은 언론의 공공성, 공적 가치를 철저하게 짓밟았다”며 이같이 말했다.
홍 분과장은 “(윤 정부는) 정권을 옹호하는 부적절한 인사를 공영방송 사장에 앉히는가 하면 정권을 비판하는 언론에는 제재와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고 말했다.
홍 분과장은 “언론·미디어 공약의 핵심은 자유롭고 창의적인 공론의 장을 만들고 미디어 강국 도약의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라며 “건강한 언론이 있어야 건강한 사회, 건강한 민주주의가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홍 분과장은 방통위 측 참석자들을 향해 “언론 자유와 민주주의 신념이 있다고 보기 어려운 분이 장으로 있는 조직에서 새 정부에 맞는 미디어 정책의 구체적 비전과 계획을 가지고 오셨을지 갑갑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이 위원장을 직접 겨냥해 비판한 것이다.
그는 그러면서 “윤석열 정권의 언론장악 진상규명과 정상화, 언론 독립성 공공성 강화, 미디어산업 진흥과 같은 산적한 과제를 두고 기대보다 우려의 마음으로 방통위 업무보고에 임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업무보고에는 이 위원장 대신 김영관 방통위 사무처장직무대리가 참석했다.
1977년 7월이었다. 해발 53m의 야트막한 구릉에 자리잡고 있던 서울 구의동 유적의 발굴 현장 설명회가 열리고 있었다.
이 발굴은 학술조사가 아니었다. 강 건너는 잠실지구, 강 이쪽은 화양지구 개발이 이뤄지면서 한강 본·지류를 정비하고, 택지 등을 조성하기 위한 실시된 구제발굴이었다. 약 3000평에 이르는 구릉은 벌써 절해고도로 변해 있었다. 주변은 개발 계획에 따라 공사가 이미 진행 중이었다.
이 구릉을 깎아내야 거기서 얻은 흙을 택지개발에 사용할 수 있었고, 또 평지로 변한 이 주변 또한 아파트 단지로 조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예부터 ‘말무덤’ ‘장군총’ 등으로 구전되었던 구릉을 그냥 뭉갤 수는 없는 일이었다.
■‘빈전이야 빈전!’
현장설명회에서 당시 김원룡 발굴단장(서울대 교수)이 ‘한말씀’ 던졌다.
“이 구릉은 빈전(殯殿·장례까지 왕·왕비의 관을 모신 전각)…가운데 관을 넣고 가옥을 세운 뒤 출입문을 단 영혼의 생가입니다.”
그는 “백제가 3년상을 치른다”는 <주서> 등 중국 역사서의 기사를 근거로 댔다.
“이 구의동 유구는 3년상이 끝나자 불사른 임시 가묘이고, 그 위에 흙을 쌓아 봉분을 만든 것”이라는게 김교수의 결론이었다.
선입견을 가질만 했다. 구릉이 예부터 무덤으로 구전되지 않았던가. 게다가 무령왕릉(1971년 발굴)에서도 “왕과 왕비의 3년상을 치렀다”고 쓴 지석이 출토된 바 있다. 또 유구의 중심부에 관곽을 넣은 것 같은 구덩이가 보였고, 무덤의 호석으로 여길만한 석축이 둘러쌓여 있었다. 유구는 무덤의 봉토처럼 보였다. 철제 무기류와 농공기구, 가락바퀴, 도기류 등의 출토품도 고분의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일부 현장 조사원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럴까. 고분이 맞을까. 구릉의 정상부라면 오히려 군사요새일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화살촉을 포함, 출토된 3000여점의 철제 무기가 그 증거 아닐까. 또 원형 구덩이 속에 조성된 온돌 시설은 사람이 상주했다는 의미가 아닐까.
그러나 현장 조사원들은 누구도 하늘 같은 스승의 견해에 토를 달지 못했다. 그해(1977년) 9월 조사가 끝났다. 구릉은 평지가 되어 아파트 단지(자양 한양아파트) 및 주변의 시설로 변모했다.
■형(고구려)을 형(고구려)으로…
11년이 지난 1988년 겨울이었다. 한창 조사중이던 몽촌토성 출토 도기(토기)를 밤새 복원하던 최종택 서울대 박물관 미술사(현 고려대 교수)가 고개를 갸웃 거렸다. 조각을 붙여보니 전형적인 고구려 도기인 ‘광구장경사이옹(廣口長頸四耳甕·입이 넓고 목이 길며 손잡이가 네 개 달린 항아리)’이었다. 중국 지안(集安)에서 흔히 출토되는 5세기 고구려의 지표 유물이다. 최종택 미술사의 눈이 번쩍였다.
몽촌토성에서 이 ‘광구장경사이옹’과 함께 출토되는 ‘장동호(몸체가 긴 항아리)’ 등의 도기가 1977년 구의동에서 나온 것과 흡사했다.
표면이 흑색·흑회색·황갈색 등이며, 태토(도기의 밑감이 되는 흙)는 고운 진흙으로 되어 있다. 항아리 몸체에 진흙 덩어리 모양의 독특한 보강재가 첨가된게 특징이다. 한마디로 ‘구의동과 몽촌토성’ 출토 도기는 전형적인 고구려 제품이었다.
하지만 ‘구의동 유적=백제 고분’이라는 스승(김원룡 교수)의 견해를 정면으로 뒤집을 수 없었다.
결국 당시 최종택 미술사와, 박순발 서울대박물관 조교(충남대 명예교수) 등이 나섰다. 둘은 이듬해(1989년) 2월 서울대 박물관에서 열린 몽촌토성 발굴유물 전시회에 참석한 스승(김원룡 교수)에게 “고구려 토기가 맞는 것 같다”고 운을 뗐다. 둘은 조마조마 했다.
혹시 스승의 노여움을 사지 않을까 해서…. 그러나 뜻밖이었다. 스승의 말씀엔 ‘쿨 내’가 진동했다. “맞는 것 같아. 이제부턴 고구려 토기라 하지.”
그 뿐이 아니었다. 그 해(1989년) 이어진 몽촌토성 서남지구 발굴에서 고구려 도기편과 함께, 구의동 유적에서 확인된 것과 비슷한 고구려 온돌유구가 노출됐다. 이제 한강을 사이에 두고 구의동 보루(강북)와 몽촌토성(강남)에 고구려 유적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분명해졌다.
■아궁이에 올려놓은 솥과 주전자
그런데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구의동 보루에 드라마틱한 6세기 역사의 ‘스틸컷’이 담겨있다.
즉 해발 53m의 구릉 정상부에 조성된 유적은 원형의 성벽을 쌓고 내부에 주거 시설을 설치한 구조로 되어 있었다.
그 내부에 온돌이 조성되어 있었고 바닥의 일부에 벽돌이 깔려 있었다. 온돌의 남쪽 아궁이에 쇠솥(鐵釜)과 쇠주전자(鐵壺)가 걸려있었다.
그 주변에는 19개 기종 369개체의 도기와, 창·칼·도끼·화살촉 등 무기, 철삽·쇠스랑·호미·끌·낫·가래 등 농공기류 등 철기(화살촉 3000여점+15개 기종 50여 점)가 고스란히 놓여 있었다. 전소된 흔적이 완연했다. 불을 서둘러 끄려던 진화의 흔적도 없었다. 불에 타고 난 뒤 흙으로 덮은 것이 확실했다.
그렇다면 구의동 보루는 적의 기습 공격을 받고 손쓸 틈도 없이 전멸되었다는 얘기가 된다. 아궁이에 올려놓은채 확인된 솥과 주전자가 그 위급 상황을 웅변해준다.
■격동의 5~6세기
언제의 일일까. 격동의 4~6세기로 시간을 돌려보자.
백제와의 패권 다툼에서 줄곧 열세를 보였던 고구려는 396년(광개토대왕 5) 백제의 58성 700촌을 빼앗는다.(백제 아신왕 5)
백제는 이때 “고구려왕의 영원한 노객이 되겠노라”(<광개토대왕비문>)고 무릎을 꿇는다.
그러나 광개토대왕(재위 391~413)의 뒤를 이은 장수왕(413~491)은 예서 만족하지 않는다. 장수왕은 증조할아버지(고국원왕·331~371)가 백제 근초고왕(346~375)에게 죽임을 당한 것을 결코 잊지 않았다. 427년 평양성으로 천도한 장수왕은 본격적인 남하정책을 편다.
장수왕은 국세가 한풀 꺾인 백제를 괴롭힌 끝에 마침내 백제의 수도 한성을 함락시킨다.(475)
고구려군의 남하 루트 상(임진강~파주 적성~양주~서울)에는 고구려가 조성한 보루가 점점이 박혀 있다.
그중 한강 유역의 고구려 보루 가운데 가장 끝부분에 설치된 곳이 바로 ‘구의동 보루’다.
구의동 보루 발굴 이후 특히 한강 유역, 그 중에서도 아차산·용마산 능선과, 그곳에서 뻗어간 산줄기에 줄지어 조성한 고구려 보루(20여곳)가 줄줄이 확인됐다. 그중 아차산 정상부에서 확인된 아차산 4보루(해발 286m·1997~98)를 시작으로 아차산 시루봉(206m·1999~2000)-홍련봉 1보루(125m·2004)-홍련봉 2보루(126m·2005)-아차산 3보루(296m·2005)-용마산 2보루(230m·2005~06) 조사가 이어졌다.
■551년의 기습과 전멸
조사 결과 한강 유역의 고구려 보루의 설치 시기를 두고 다양한 견해가 제기되었다.
그러나 연대의 틀은 475년(고구려의 한성 함락)~551년(백제군의 한강유역 차지) 사이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 중 구의동 보루의 성격을 처음으로 규명한 최종택 교수(현 고려대)의 견해를 중심으로 <삼국사기> 기록과 맞춰보며 살펴보자.
즉 475년 백제의 한성을 공격한 고구려군은 북성(풍납토성)과 남성(몽촌토성)을 차례로 함락시킨다. 백제 개로왕(455~475)은 아차산성까지 끌려와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개로왕의 뒤를 이은 문주왕(475~477)은 웅진(공주)으로 천도한다. 이로써 한성 백제 시대는 막을 내린다.
한성 공략을 성공리에 마친 고구려 장수왕은 귀국한다. 그러나 고구려군은 몽촌토성에 주둔하면서 백제군이 퇴각한 웅진(공주) 방면으로 계속 남하한다. 하지만 백제는 무령왕(501~523) 즉위 무렵부터 전력을 재정비한다. 그러자 고구려군은 한강 이북으로 철수하여 아차산·용마산 일대에 보루를 세워 교두보로 삼는다. 그러다 50여년이 지난 551년 한강 유역이 나·제 연합군의 기습공격을 받는다.
<삼국사기> ‘열전·거칠부’는 “동맹을 맺은 백제가 평양(현재의 서울 강북)을 빼앗자 (신라도) 고구려의 10군을 접수했다”고 전했다.
<일본서기>는 “551년 백제 성왕이 나·제 연합군을 이끌고 한성을 비롯, 옛 땅 6군을 회복했다”(‘흠명천황’조)고 기록했다.
1977년 확인된 구의동 보루의 ‘스틸컷’은 바로 551년 백제 성왕이 이끈 연합군의 기습공격, 바로 그 순간을 가리킨다. 솥과 주전자를 아궁이에 걸어놓고 밥을 해먹으려던 고구려군 병사들은 창졸간에 백제군의 기습을 받고 전멸했을 것이다.
■창 10점의 깊은 뜻
이어진 아차산·용마산 보루군의 출토양상에서 드라마틱한 현상을 읽을 수 있었다. 아차산·용마산 보루에서는 구의동에서 3000여 점이나 남아있던 화살촉이라든가, 창, 칼 등이 적었다. 무엇보다 밥을 짓는 솥과 주전자 등이 구의동 보루에서처럼 아궁이에 걸려있지 않았다.
그래서 이런 이런 스토리텔링이 가능하다. 한강에 바로 붙어있는 구의동 보루는 손 쓸 틈도 없이 전멸되었지만 그보다 2~5㎞ 떨어진 홍련봉~아차산 4보루에 주둔한 고구려군은 그렇지 않았다. 구의동 보루의 참변을 목격하고 무기와 취사도구 등을 수습하고 안전하게 철수했다.
그런데 구의동 주둔군의 전멸은 고구려군에게는 불행한 일이지만, 고고학적으로는 ‘폐기의 동시성’이라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즉 그곳에서 1400여년 동안 누구도 손도 타지않고 고스란히 확인된 무기를 통해 보루 주둔 병사들의 수를 가늠해 볼 수 있다.
구의동 보루에서는 3000여 점의 화살촉과 창 10점, 외날도끼 4점, 칼(대도) 2점, 작은 칼(도자) 3점 등의 무기가 확인됐다. 당시 군인의 대표적인 개인무기는 창이었다.
구의동 보루에는 10명 안팎의 병사가 주둔했다는 얘기가 된다. 휴대무기는 근거리 전투에 효과적인 창 만 있지 않았다. 원거리 전투에 필요한 활도 갖고 있어야 했다. <구당서> 등은 “고구려인들은 밤낮으로 활쏘기를 배웠다”고 전했다.
고구려 벽화(무용총·덕흥리 고분 등)에서 보듯 ‘말 타고 되돌아쏘기(파르티안 샷) 신공’ 등 활쏘기는 기본기 중의 기본기였다. 그렇다면 구의동 병사들은 개인당 창 1점과, 활과 화살 300발을 기본 개인화기로 휴대했을 것이다. 칼과 도끼는 보조무기였을 것이다. 이들은 원거리 전투엔 궁술로, 근접전엔 창과 칼로 적군과 맞서 싸웠을 것이다.
■아차산 4보루엔 100명 주둔
아차산 능선의 최북단(286m)에 구축한 아차산 4보루에서는 13기의 온돌이 확인됐다. 그런데 다른 유구보다 1.5m 가량 높이 축조된 1호 건물터에서는 온돌 2기와 함께 ‘지도형(支都兄)’ 명 접시 및 철제 투구 등 철기가 다수 출토되었다. 이 건물은 지휘관용 숙소였을 가능성이 크다.
아차산 4보루의 온돌방 규모는 13~16평 정도이다. 구의동 보루의 온돌방(14평)과 비슷하다. 그렇다면 어떨까. 구의동 보루에서처럼 온돌 1기에 10명 안팎이 살았다면 아차산 4보루의 주둔군 수는 100명 정도로 추산할 수 있다. <신당서>(‘병지’)는 “부대의 최소단위인 ‘화(火)’는 10명, ‘대(隊)’는 ‘화’를 5개 합친 50명…”이라 했다. 구의동엔 ‘1개 화(火·10명)’, 아차산 4보루에는 ‘2개 대(隊·100명)’가 각각 주둔했다는 얘기다.
■구절판=지휘관의 식판
각 보루에서는 다양한 고구려 그릇, 접시, 뚜껑, 종지류가 확인되었다. 병사들의 개인 식기로 추정된다. 그중에는 5종류의 반찬을 담을 수 있는 아차산 4보루 출토 구절판(실제로는 5절판)이 눈길을 끈다. 확인된 구절판은 5개체분 정도된다.
그런데 아차산 4보루는 앞서 언급했듯이 ‘지도형’ 명 접시는 물론, ‘후부도□형(後部都□兄)’과 ‘염모형(苒牟兄)’, ‘하관(下官)’ 등의 명문이 새겨진 식기가 확인된 곳이다. 이중 ‘후부’는 고구려의 평양천도 이후 귀족들이 살았던 오부(五部) 중 하나였다.
그렇다면 아차산에 이 오부 중 ‘후부’ 소속인 ‘도□형’이라는 귀족이 지휘관으로 파견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형(兄)’자 돌림은 인명일 수도, 관등명일 수도 있다. 어쨌든 아차산 4보루에서 출토된 구절판은 이 보루의 지휘관급 식판이었을 가능성이 짙다. 이 구절판의 바깥 바닥면에 새겨진 ‘대(大)’자는 바로 “내 식판이니까 건들지마”라는 식별문자일 가능성이 짙다.
개인식기에는 각 병사들이 직접 새긴 ‘글자 및 부호’(井, 大, 小, 工, 卍 등)가 다수 확인됐다. 그렇다면 당대 고구려 병사들이 자기 식기에 손쉽게 한자를 새겨 넣을만큼 공부를 했다는 말인가. 그랬다.
<구당서> <신당서> 등은 “책을 좋아한 고구려인의 미혼자제는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경당에서 주야로 독서한다”(‘동이열전’)고 했다. 아무리 돈없고, ‘빽’이 없어서 최전방으로 징집된 고구려 병사였지만 개인식기에 한자 한글자 쓰는 것은 시쳇말로 ‘껌’이었을 것이다.
■떡이 비상전투 식량?
또 흥미로운 유물이 바로 각 보루에서 빠짐없이 출토된 시루이다. 이는 두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대량 배식을 위해 쌀을 쪄서 밥을 한 것일 수도 있다. 혹은 장거리 행군 및 훈련이나 전투 상황에서는 아예 떡으로 만들어 전투식량처럼 지니고 다니면서 먹었을 수도 있다. 떡을 만들면 조직이 치밀해져서 부피가 줄어들기 때문에 휴대가 간편하다는 장점도 있다. 게다가 시루떡 같은 ‘찐 떡’과 인절미를 비롯한 ‘친 떡’은 굳어진 상태에서도 불을 가하면 다시 먹을 수 있다. 실제로 <삼국유사> 등에 “신라 효소왕 연간(692~702)에 죽지랑이 부하를 위해 설병(舌餠·멥쌀 가루에 소금을 조금 섞어 그대로 쪄낸 백설기)을 갖고 떠났고”(‘열전 죽지랑’), “진표율사가 760년(경덕왕 19) 쌀 20말을 쪄서 말려 양식으로 삼아 전북 부안으로 갔다”(‘의해·진표전간’)는 기사가 보인다.
■군부대에 디딜방아?
구의동 및 아차산 등의 보루에서는 농공기구류가 빠짐없이 발굴되었다. 고구려군이 평상시에는 식량 조달을 위한 생산활동을 해왔다는 의미다. 즉 둔전(屯田)을 경작했다는 뜻이다. 고구려군은 쇠스랑과 보습, 삽날(가래), 호미 등으로 논밭을 갈고, 낫 등으로 곡물을 수확하고 잡초를 제거했다. 이와 관련해서 아차산 3·6보루에서 확인된 ‘디딜방앗간’과, ‘볼씨’(디딜방아나 물레방아의 쌀개를 받치기 위하여 기둥처럼 박아 놓은 나무나 돌)가 눈길을 끈다. 고구려 취사병이 ‘볏섬’ 상태의 군량을 직접 도정해서 밥을 지었다는 뜻이 된다. 또 각 보루에서는 어망추가 확인되었다. 이것은 고구려군이 때때로 한강이나 중랑천 등에서 물고기를 잡았다는 의미가 된다. 각 보루에서 확인되는 가락바퀴(방추차)도 흥미롭다. 가락바퀴는 물레로 실을 지을 때 사용하는 가락에 끼워 회전을 돕는 부품이다. 고구려 병사들이 직접 군복을 수선하고, 부대 깃발을 만든 상황을 웅변해주고 있다.
■군시설에 기와건물?
지금까지 조사된 보루 가운데 홍련봉 1·2보루도 주목을 끈다.
홍련봉 1보루는 구의동 보루와 가장 가깝고, 아차산 줄기의 남쪽 끝자락의 독립구릉 정상부(해발 125m)에 자리잡고 있다. 비교적 낮은 곳에 있고 접근이 쉬운 편이다. 그런데 이 보루에서 연화문 와당 6점을 비롯, 각종 기와가 다량 확인됐다.
<구당서> 등은 “고구려에서는 왕궁과 관청, 사찰, 사당 등에만 기와를 쓴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 홍련봉 1보루에는 군사시설과 함께 대민(對民) 업무를 담당하는 행정관청이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홍련봉 1보루와 150m 정도 떨어진 홍련봉 2보루에서도 흥미로운 유물이 확인되었다.
‘경자(庚子·520년)’명 도기가 첫손으로 꼽힌다. 유적의 중심연대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유물이다. 또한 홍련봉 2보루에서는 ‘관옹(官瓮·관청에서 쓰는 항아리)’ 명 도기와 함께 철기를 제작·수리할 때 단조(鍛造·금속을 두들겨 형태를 만듬)용 공구로 쓰인 집게가 확인됐다. 따라서 홍련봉 2보루는 군수물자의 생산과 수리 및 보급창고의 역할을 했을 수도 있다.
■재건축 아파트촌이 구의동 보루
얼마전 필자는 구의동 보루를 없애고 조성한 것으로 전해진 자양 한양아파트 단지와 그 인근 지역을 지나쳤다.
그런데 아파트 단지에 붙은 ‘아파트 재건축 사업’ 관련 플래카트가 눈에 띄었다. 자료를 찾아보니 1983년 5월 준공된 조성된 아파트(6개동 444가구·12층)를 초고층(40층짜리) 아파트 단지로 재건축 추진중이라 한다. 계산해보니 벌써 42년이 흘렀다.
그곳에 구릉이 있었고, 그곳에 한강유역을 두고 쟁탈전을 벌였던 고구려의 최전방 보루가 존재했다는 사실은 이제 기억 너머로 사라져갈 판이다.
또 그곳에 백제군의 기습에 전멸당한 고구려 병사들의 ‘최후’, 그 순간이 서려있다는 것도…. 그러나 필자는 이렇게 다시 기록한다. 영영 잊혀지지 않기를 바라면서….(이 기사를 위해 최종택 고려대 교수와 이정범 한국고고환경연구소 연구원이 도움말과 자료를 제공해주었습니다.) lkh0745@naver.com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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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범·하재령·조보람, <홍련봉 1·2보루>, 한국고고환경연구소,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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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광철, ‘고구려 남부 전선 주둔부대의 생활상-한강 유역의 고구려 보루를 통해서’, <고구려 발해연구> 38권, 고구려 발해학회,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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